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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집 [2]

​익명 6

토니 스타크는 복잡한 사람이다.

 

[다른 데로 새지말고 바로 와.]

 

어차피 내 위치 정도야 손바닥 안이면서 굳이 이런 메세지를 보낸다. 하지만 메세지를 읽는 내 반응까지가 그의 즐거움임을 이제는 안다.

[서점만 잠깐 들리고 싶어요!]

[그래. 거기서 봐.]

어느 서점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가 찾아올 것을 알기에 굳이 답장하지 않는다.

 

처음 문고리를 부수고 도망쳤던 날, 그는 단 삼 일 만에 나를 다시 찾아왔고, 그다음 그의 옷을 훔쳐서 나왔던 날, 하루 만에 나를 찾아왔다. 그다음은 반나절, 또 그다음은 3시간 만에.

망령도 이렇게 끈질기진 않을 텐데. 그래, 이건 망령이다. 아주 지독한 사막의 망령.

그리고 우습게도 그런 떼어낼 수 없는 망령도, 시간이 가니 적응이 된다. 그는 아주 막무가내이면서도 젠틀하다. 누군가에겐 동경의 대상이고 누군가에겐 증오의 대상이다. 복잡한 사람.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이고.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아주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속내를 알기가 어려웠다.

제일 처음 깨달았던 것은 스타크씨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고, 다음은 몇 가지만 빼면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는 말도 빈 말이 아니란 사실이었고, 그가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좋아해서... 여전히 이 부분은 완벽히 납득은 가지 않지만, 어쨌든, 나를 두고 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깨달았을 때는 허탈함마저 느꼈다.

'누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런 짓을 해요?'

'제가 스타크씨를 좋아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거예요!'

'좋아해요... 좋아해..... 그러니까 제발 그만....'

화도 내고, 밀어내고, 거짓으로 좋아한다고 빌어도 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후에는 그가 원하는 대로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인정해. 네가 나를 두고 갈 수 없다는 걸.

언젠가 그에게 들었던 말. 그 대답을 너무 늦게 들려줬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는데. 

스타크씨 말이 맞아요. 저는 스타크씨를 두고 갈 수 없어요. 

그가 도착하기까지 대략 30분. 문자를 보낸지 10분쯤 지났으니까... 남은 시간은 약 20분. 그 사이에 책을 고르고... 윗층까지 둘러보고 싶다고 하면 기다려주시겠지? 

시간을 계산하며 걷는데 서점 앞에 익숙한 남자가 서있다. 코트에 선글라스. 쉽사리 말을 붙이기에는 어딘가 어려워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어, 스타크씨? 벌써 오셨어요?"

"마침 근처였어. 들어 가자."

"제가 더 먼 서점을 갔으면 어쩔 뻔 했어요."

그가 별 질문을 다한다는 듯 눈썹을 들썩인다. 맞다. 쓸데없는 걱정.

 

"저 신간 코너랑 만화책 코너도 보고 싶은데 괜찮죠?"

"물론."

서점 문을 여는 내 뒤를 바짝 붙어 손잡이를 잡는 그에게서 따뜻한 바람이 끼쳐온다. 계속 차에서 기다리셨나 봐.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간다. 볼일을 보고 가겠다고 해도 꼭 나를 데리러 오는 것은 그의 습관이다. 스타크씨 안 바쁘세요? 참다 참다 그렇게 물은 적이 있으나 그의 입술로 입을 틀어막힌 이후로 더이상 묻지 않았다.

사람이 몇 없는 조용한 서점을 천천히 걸었다. 책 냄새. 따뜻한 히터 냄새. 조용한 공간을 울리는 발소리. 내 옆에서 책을 들었다 놓는 인기척.

"스타크씨, 저만 따라다니지 말고 보고 싶은 거 보셔도 돼요. 이 안에서는 사라질 수도 없잖아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졌다, 졌어. 사막의 망령. 여기서 떨어지라고 해봤자 그의 불안만 더 높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건 그동안 수많은 데이터로 얻은 결과다. 그는 어떤 복잡한 수학 공식보다 더 이해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 애를 먹게 한 난제다. 당장 돌아가자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면 그를 내버려 두는 편이 옳다.

 

"어, 이 노래..."

책을 뒤적이다 보니 서점에 흐르는 조용한 음악이 귀를 사로잡는다. 

"제가 좋아하는 캐롤인데. 마침 딱 나오네요. 신기하다."

"그래?"

"네, 그러고 보니 스타크씨가 전에 어떤 캐롤을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던 것 같, 은...."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니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 선글라스 안으로 눈동자가 반짝인다. 위험 신호. 뒷말을 흐리고 시선을 손에 쥔 책 표지로 돌리자 그가 여지없이 허리에 팔을 감아온다. 깊게 끌어안는 몸에 당황하는 것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느새 단단히 옭아맨 그의 손이 배 가운데까지 닿아있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표지의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손닿지 않는 뱃속 깊은 곳이 간지럽다.

 

"그만 갈까?"

"아, 네...."


 

돌아갈 시간이다. 

나를 기다리는 집으로.

    ​유동식 크리스마스 합작 
    ​Special thanks to redco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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