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미의 집 [1]
익명 6
거미는 하나의 집을 짓는다.
거미의 집은 침범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가 된다.
세계의 크기는 누구도 정해주지 않는다. 오롯이 스스로 그 크기를 정할 뿐이다.
거미의 집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바람과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그저 흔들린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렇게 구축한 집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산다.
그런 거미의 집을 무너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집을 잃고 허둥대는 거미를 손안에 완벽히 가두기 위한 좋은 방법은 집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주 강력한 힘을 가하면 누구라도 굴복하지 않고는 못배기리라. 하지만 애석하게도 집이 한번에 파괴되어버린 거미는 미련 없이 낡은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집을 짓는다. 그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으로 미루어볼 때, 온전히 손안에 넣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훌쩍 날아가 버려 새 집을 짓는 데에 열중이기 때문에. 뒤돌아 보지 않는다. 누가, 왜, 어떠한 연유로 그랬는지, 집을 부순 이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거미의 집을 천천히 무너뜨리면 어떨까?
한가닥, 한 가닥씩 천천히.
한 쪽이 무너진 것을 확인한 거미는 무너진 곳을 고치러 다가온다. 더 견고하고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한다. 바로 그 때, 그 옆의 한 가닥마저 끊어낸다면, 나풀거리는 거미줄이 스스로의 족쇄가 된다. 끊어진 거미줄은 몸을 감겨들고 달라붙어, 벗어나려고 버둥거릴수록 더욱 엉켜 든다.
발버둥 칠수록 집은 무너진다. 엉킨 거미의 집은 자신을 묶어 서서히 움직일 수 없게 만들고, 그때서야 비로소 거미는 자신의 삶을 체념한다. 얌전히 다가올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설마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하얀 실이, 자신을 구속할 줄은 몰랐을테니.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뒤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거미를 옭아매고 있는 것들을 조금 풀어주면, 거미의 팔이, 다리가, 자유를 금세 되찾는다. 부서지지 않게 천천히. 그와 동시에 거미는 다시 삶을 이어간다. 다시 살아서 눈앞에서 움직인다. 순순히 죽음을 기다렸던 사실을 금방이라도 잊은 것처럼.
왜 이렇게 번거롭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을 거치느냐 묻는다면, 그렇게 삶을 다시 얻은 거미는 자신에게 얽혀 너덜거렸던 집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옥죄였던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눈앞에서 자신의 세상이 무너졌음에도 생명의 가능성을 느낀 거미는 그저 그 자리에서 다시 집을 짓는다. 더욱 크고 반짝이는 집을 짓는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집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타고난 성정일까.
가능성이라는 달콤한 먹이를 양분삼아 다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도망가지 않고. 그 과정을 몇번이고 반복해도, 거미는 그 집을 떠나지 않는다.
거미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다시 삶을 쥐여주는 것.
아마 그것들이 거미의 자유 의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거미는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이 열심히 뿌려낸 것들이 누군가의 손과 손 사이였다면.
마음과 마음 사이였다면.
감히 누군가의 손을 빌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집을 지은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나는 네가 집을 짓는 것을 지켜본다. 새로운 집은 더욱 크고 튼튼하며, 반짝인다.
너는 끊임없이 나의 마음에 집을 짓는다.
너의 집을 무너뜨리고 그것을 너의 족쇄로 만들지 말지는 오롯이 나의 손에 달렸다.
너는 그것을 알면서도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꿈틀거리는 생명력.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의 집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너를 좀 더 오래 지켜보고 싶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손을 들어 올려 너의 새로운 세상을 무너뜨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가라앉힌다. 네가 도망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옭아맨 족쇄에 순응하는 너는 내가 살아가며 본 것들 중 최악이다. 죽지마. 나는 너의 죽음마저 내 손 안에서 정하고 싶거든.
죽었다고 착각하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하니까.
그리고 너는 내 시선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가장 아름답다. 너를 온전히 내 손안에 쥐고 싶다. 너의 손발을 묶고 너의 숨마저 내가 마시도록.
크고 튼튼한 새 집은, 점점 더 넓어져 마음을 전부 뒤덮는다. 아, 이제는 네가 내 마음에 집을 지은 것인지, 내가 네 세상에 떨어져 묶인 것인지 모르겠다. 거미의 집이 나를 전부 뒤덮는다. 그러면 이제 나는 꼼짝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네가 뻗어낸 하얀 흔적들이 뒤덮은 것이 내 전부임을 너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내가 너의 족쇄가 되는 것이야말로 고대해오던 순간이다.
"스타크씨..."
"왜?"
"저 이제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가고 싶으면 가."
"....."
"아니면 나를 그냥 죽이던가."
죽일 수 없겠지. 너는 무너지는 나를 살리러 올 테니까. 내가 너를 옭아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토니는 아이의 대답을 알고 있다.
"어차피 네가 살린 거잖아. 네 마음대로 하라니까?"
"저는 이런걸 원한 적 없어요..."
피터는 무의식중에 자신이 걸친 옷깃을 모아 잡았고, 토니의 시선은 움켜쥔 손에 닿았다.
"보내주면, 돌아올 거야?"
"...."
"대답해."
"...."
피터가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물자 대답을 기다리던 토니가 괜스레 방을 거닐었다. 환경을 확인이라도 하듯 천장까지 꼼꼼히 둘러본 토니가 여상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방이 좀 허전하네. 트리라도 하나 놔줄까? 크리스마스! 너희 나이대에는 그런 이벤트 좋아하잖아."
"...필요없어요."
"아쉽네. 갖고싶은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제가 원하는건 하나뿐인거 아시잖아요."
"좋아하는 캐롤은? 샌드위치를 좋아하는건 아는데. 기본적인건 조사했지만 역시 그런 세세한 음악적 취향까지는 알기 어려워서."
"....."
"...처음엔 잘도 떠들더니 말 수가 많이 줄었어. 기억나? 그때도 내가 널 데리러 오겠다고 했었는데 넌 대답하지 않았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사라졌고. 그 사막에서 말이야."
토니가 상태를 확인이라도 하듯 손으로 벽을 쓸어 보다가 뒤를 돌아 피터를 바라봤다. 피터는 줄곧 토니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는지 곧장 두 눈이 마주쳤다. 토니는 그게 퍽 만족스러웠다. 시선 한번 주지 않던 옆얼굴이 떠올랐으니. 어떤 순간의 장면은 너무 강렬해서, 여전히 눈감으면 생생히 펼쳐질 정도다.
"죽지 않을 거라고 말했잖아요..."
"그러게. 돌아오겠다고 대답했으면 또 깜빡 속아 넘어갈 뻔 했지뭐야?"
"...스타크씨가 왜 저한테 화내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뭘 잘못한건지 그냥 얘기해주세요..."
"하하, 잘못, 이라-"
그러게 왜 나에게 손을 뻗었어.
왜 나에게 집을 지었어.
"이제 그만 인정해."
"뭐를..."
"네가 나를 두고 갈 수 없다는 걸."
어차피 죽어도 놔줄 생각 없으니까.
나는 너의 집.
거미의 집. 거미의 세계.